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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영끌족, 수도권 아파트 매수세 심상찮아’라는 기사가 떠 있었다. (…) 끌어모으면 아파트를 살 수 있는 영혼은 대체 어떤 영혼일까. 나는 영혼마저도 실속이 없네. 웃음이 나왔는데 솔직히 웃기지는 않았다.”
누구의 글일까. 아니, 그보다 시퍼런 저 허무와 냉소는 누구를 향하는가. 정권이 바뀌자마자 이글대는 ‘활 신용정보조회서 화산’을 보면, 부동산 시장의 광기는 애오라지 정책 탓만은 아니라는 기괴한 역설이 성립된다.
최근 몇년 새 한국 소설에서 불거진 특징 하나를 꼽자면, 부동산의 재현일 터. ‘아파트 공화국에 무너진 내 인생’과 같은 여지 없는 제목부터 아동·청소년 소설 작가가 –지난 작중 인물들의 이제 닥칠 생애사처럼– 쓴 ‘세대주 오영선’은 두말할 나위 중도상환수수료 계산기 없거니와, 부동산을 청년세대 슬픔의 근원으로 감지시키는 ‘젊은 근희의 슬픔’(이서수 소설집, 단편 ‘발 없는 새 떨어뜨리기’), 친구의 보증금 사기와 배신조차 기정사실화하지 않은 채 20대의 존재 근거로 남겨 두려는 안간힘을 또한 슬프게 감각시키는 ‘조금 망한 사랑’(김지연 소설집, 단편 ‘포기’) 등 헤아리기 어렵다. 모두 2021년 이후 작품들이다.
체크카드 추리자면, 집값 폭등, 전세 사기 따위로 인한 추락 내지 낙오, 절망 또는 불신, 노골화한 욕망 또는 왜곡된 희망. “배고픈 거지가 있다는 것을 추문으로 만들고, 그래서 인간을 억누르는 억압의 정체를 뚜렷하게 보여준다”는 게 문학(김현)이라면, 불온한 부동산만큼 문학에서 불온하게 재현되어야 할 소재는 근래 –윤석열 부류를 제외하고– 없었겠다 기초생활수급자장학금대출 .
‘달려라, 아비’ ‘두근두근 내 인생’ 등에 의지의 명랑 세계를 담았던 작가 김애란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신작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에는 ‘집’ 이야기가 많다. 2019년부터 지난해 쓰인 단편들로 엮였으니, 모두 과거의 집인데 그 과거는 낡을 기미가 없다. 김애란만 어두워지고…, 비감해지고 있다.
‘좋은 이웃’은 별내지구쌍용예가분양가 세 살던 아파트가 팔려 몇달 내 이주해야 하는 40대 주희, 호준 부부를 주인공으로 한다. 새 거처를 아직 구하지 못한 이들을 젊은 신혼부부가 방문한다. 바로 위층 집을 사서 입주할 예정으로, 한달짜리 인테리어 공사에 동의해달라는 그들은, “밝은 사람”들이었다. 집을 개조해 독서교실 수업을 꾸려온 주희로선 밝게만 서명하긴 어려운 처지였으나, 주희와 호준이 누군가. “신혼 초 ‘우리 시작을 이웃과 함께하자’며 유니세프 정기 후원”에 나섰던 이들 아닌가. 이들의 ‘의식’은 조금씩 버려지지만. 이미 떠안은 빚에 그사이 폭등한 집값을 보건대 외곽으로, 그조차 평수를 줄여 갈 게 뻔한 터 하나둘 미리 처분하는 철학·역사서와 시집, 소설책처럼.
주희는 초등생 시우만은 특별히 방문 지도한다. 인권 의식이 남다른 아이다. 시장에서 장사하는 부모와 ‘서울 변두리 30년 된 일자형 복도식 네 동짜리 아파트’에서 살고 장애가 있다 뿐 “총명하고 올곧”다. 주희가 개인 사업자로 나서기 전 직장 때의 학생이라 업계 도의상 거절했으나, 시우 어머니가 시급을 더 주겠다면서까지 지도를 간청해 왔다. 주희가 누군가. 고민 끝에 이전 같은 시급으로 아이를 맡겠다고 결정한 “스스로가 고마웠다.” 그 주희를 시우네마저 낙담시켰으니, 다음달 인근 더 넓은 신축 아파트로 입주한다는 시우 어머니의 말을 듣고서다.
‘빗방울처럼’은 거꾸로 집을 갖게 된 이의 불행을 엿본다. 3년 전 이사한 깔끔한 신축 빌라, 몇달 뒤 청약 당첨된 신혼부부 특공 아파트는 지극히 성실한 지수 부부의 지극히 당연한 궤적 같다. 그러나 빌라 전세 사기를 당하면서 운명은 뒤집힌다. 마지못해 빌라를 낙찰받으며 더 늘어난 빚에 허덕이던 남편은 과로사하고, 멀쩡하던 천장에서 물이 툭툭 떨어지길 하염없다. 소설은 외견, 누수를 고친 그 집에서 삶을 마감하고자 도배까지 하는 지수와 도배사의 하루다. 내막은, 떠나면서까지 주거지를 돌보는 주거자, 환청처럼 주거자를 살리려는 주거지가 주고받는 말과 마음의 시간이다.
‘좋은 이웃’에서 노상 ‘비교’하며 ‘추락’하고 마는 중층의 감정으로 주희는 물었었다. ‘돌아가고 싶은 과거’가 언제냐고. 남편은 “이 집 계약할 때”라 말한다. 공인중개사가 조금 더 대출받아 집을 아예 사라고 조언했던 즈음. 이후 남편은 “요즘은 풍경이 다 돈으로 보인다”고 늘 넋두리했지만, 주희는 몰랐다. “우리 아이를 구할 수 있었던 때” 대신 4년 전 그때를 호준이 천연스레 꼽을 줄을. ‘우리 아이’ 이야기는 작중 구체화하지 않는다. 주희를 보며 연민, 동정, 수치, 모멸, 의심, 냉소를 오갔을 독자는 –이 구절을 놓치지 않았다면– 종내 섬뜩해지고 말겠다. 어쩌면 부동산에 덜미 잡히고 잡아먹히는 사람들에게 진짜 비극은 오직 부동산뿐이라는 은유 같다.
소설집 안에서 소설끼리 만나 주희가 지수에게 ‘돌아가고 싶은 과거’를 묻는다면 지수는 언제라 답할까. 직업과 처지도 비슷하거니와 지수는 또 다른 자신 주희에게 이미 묻고 있는 건 아닐까.
여러 작품에 세 글자 “남의 집”은 되풀이된다. “남의 집”(‘숲속 작은 집’), “남의 집”(‘좋은 이웃’), “남의 집”(‘빗방울처럼’)이 바로 “집에 갈 시간”(‘홈 파티’)을 흩트리고 “우리집”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로 채운 “공간”(‘좋은 이웃’, ‘빗방울처럼’, ‘레몬케이크’ 등)을 허무는 또 다른 장본이란 듯하다.



안녕이라 그랬어 l 김애란 지음, 문학동네, 1만6800원


모든 작품이 부동산 문제로만 수렴되진 않는다. 여기저기 서스펜스 감각도 놓치기 어렵다. 하지만 7편 단편에서 거의 예외 없이 자본주의 계급 차이의 양태와 세세한 심리적 파급을 김애란은 포착하고자 한다.
작가 박완서(1931~2011)가 그랬다. 1970년대 강남 아파트 개발 시대, 남의 집을 흉내 내려다 결국 남의 남편과 불륜까지 자행하는 젊은 주부의 욕망과 절망(단편 ‘닮은 방들’, 1974), 부동산 투기에 밝은 아내가 더 돈을 벌고 그녀의 “답사”에 지질학자인 ‘나’의 ‘답사’가 희화화되는 순수 상실의 세태(‘낙토의 아이들’, 1978) 등이 사례다.
다만 그때와 다른 게 있다. 욕망하여 행위하였으므로 욕망의 파장을 다뤘던 과거와 달리, 이제 ‘남의 집’은 욕망할 수 없이 상상 속에나 있으므로 상상만으로 상처가 되는 게 지금 문학에서의 실태다.
기사 맨 앞 인용문은 ‘82년생 김지영’의 작가 조남주의 2022년 소설 ‘서영동 이야기’ 맨 끝에서 따왔다. 지금 다시 심상치 않다. 오래된 비감이 서늘한 예감이 되려는가.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